수 필

소 돼지들의 한

문석흥 2013. 11. 30. 09:55

소 돼지들의 한


  초등학교 시절, 같은 마을에 어느 집 소가 병들어 죽어서 갖다 묻었는데 밤에 동네 몇 사람이 몰래 가서 파다가 삶아 먹은 일이 있었다. 그 후 소문으로는 고기가 상해서 좀  썩은 냄새는 났으나 먹고 나서 아무런 뒤탈이 없었다는 것이다. 요즘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당시 동네 사람들이 삶아 먹은 소고기가 구제역에 걸려 죽은 소고기가 아닌가 한다. 당시 그분들은 소가 단순히 병들어 죽은 줄로 알았을 뿐이지 구제역에 대한 개념조차 몰랐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쇠고기는커녕 하루 세끼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기에 설날이나 잔칫날, 제삿날에나 고기와 흰 쌀밥 맛을 좀 보았던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그랬기에 아무리 병들어 죽은 소라할지라도 땅에 묻어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일이 아니었겠는가. 먹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먹고 보자는 심리에서 그랬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눈물겨운 이야기다.
  구제역에 대해서는 1514년 이탈리아의 수도승에 의해 소의 전염병으로 기술된 것이 최초이고 우리나라는 1911년에 소 11두에서 시작된 것으로 기록되었다 한다. 그러고 보면 구제역은 옛날부터 있었던 것이다. 다만, 지금처럼 식용을 목적으로 대량 집단 사육을 하지 않았을뿐더러 널리 유통되지 않았기에 급속히 전염되지가 않았을 뿐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구제역이 전국으로 확산하여 지금까지 살 처분되어 땅속에 매몰된 소 돼지 수만도 3백만 마리가 넘고 매몰지만도 4천여 곳이나 된다 한다. 따라서 이에 따른 경제적 손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식처럼 정성을 다해 키워온 사육 농가의 그 허탈감과 실의는 무엇으로 다 헤아리랴. 이 고통을 감당할 길 없어 자살한 주인도 있다 하지 않은가.
  관계 기관이나 공무원 해당 지역 주민이 밤잠을 못 자가며 심지어는 설에 고향 방문도 못할 정도로 방역에 전력투구하고 있지만, 좀처럼 수그러지지 않는다. 구제역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여름에는 하루밖에 생존을 못하지만, 영하 5도 이하에서는 1년까지도 생존한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금년 겨울은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가 한 달 내내 계속되었으니 확산 방지에 실효를 거두기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래도 구제역 바이러스는 발굽이 둘로 갈라진 짐승에게만 전염되고 사람에게는 전염이 되지도 않거니와 익혀서 먹으면 아무 이상이 없다 하니 다행이다.
  돼지가 300여 마리, 소가 1,000여 마리가 살 처분 되었으니 시장 공급량도 급격히 감소되어 고기값이 급등하고 있다. 그런데다 아직 비 전염 지역에서나마 구제역 바이러스의 전파 때문에 자유로운 유통이 어렵다 보니 전국의 육류 관련 업소가 문을 닫아야 하는 지경이고 유가공 업체에도 큰 타격이라 한다. 이러다가 육류 파동이 올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근년에 구제역이 발생한 적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끝도 없이 전국적으로 번져가기도 처음이다. 다급한 나머지 매몰 살 처분하다 보니 제2차로 침출수로 인한 환경오염이 심각하다고 한다. 이제 또 이를 막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게 되었다.
  윤택한 삶을 위해서 끊임없이 자원을 개발하고 발전시켜가고 있지만,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하는 사이 역기능도 따르고 있다. 우리 역사상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이런 육류를 지금처럼 배불리 먹어 봤던 적이 있었는가.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잘 안 먹는다는 돼지 삼겹살을 유독 우리는 즐겨 먹고 있다. 그 바람에 우리의 몸은 보기 좋게 살도 오르고 몸집도 커졌다. 그러나 한편, 그 덕에 심혈관 질환도 늘은 게 사실이다. 이 기회에 우리도 잠시 숨을 고르고 그동안의 우리의 식생활 실태를 되돌아보고 특히 육류 중심의 회식 문화와 일상의 식생활 문화의 개선도 생각해 봄 직하다.
  우리가 식구처럼 키워온 소나 돼지는 어려웠던 시절 우리의 살림밑천이요, 농사의 일꾼이었고 말로에는 먹이가 되어 육신을 바침으로써 그의 의무를 다해 왔다. 이제 그들은 그 할 일을 못다 한 한을 안은 채 비명으로 집단 학살을 당하는 운명이 되었다. 어디서부터 잘 못된 것인지 심각히 고민해 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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