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도시락 이야기-發

문석흥 2013. 11. 30. 09:56

  도시락 이야기-發


  드디어 초‧중‧고생들의 무상급식이 시작되었다. 학교에 따라서 실시 대상 학년의 차이는 있다지만 곧 전 학년 대상으로 실시할 것이라 한다.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던 시절, 무상급식이란 생각이나 해 봤던 일인가. 이제 우리나라도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서다 보니 사회 각 분야별로 복지 혜택이 가시화 되고 있는 것이다. 도시락 없이 무상으로 학교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 우리의 2세대를 보면서 흐뭇한 마음도 들면서 지난 시절 애환 서린 도시락의 추억이 떠오른다.
  학창 시절의 추억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도시락에 얽힌 추억도 쉽게 잊히지 않는 추억이다. 도시락에 관한 추억도 세대별로 다를 것이다. 나는 긴 네모꼴의 춤이 좀 높은 한얀 알루미늄 도시락 세대라고나 할까?
  도시락의 모양도 모양이지만, 그 안에 담긴 밥과 반찬도 여러 가지 이야깃거리가 있다. 여간 부잣집이 아니고서는 하얀 쌀밥은 드물었고, 대부분 살이 약간 섞인 거친 보리밥에 때로는 감자 덩어리가 묻혀 있기도 했고 젓가락은 밥 표면에 대각선으로 눕혀져 앞면만 드러난 채 묻혀 있었다. 반찬은 하얀 종제기에 고추장이나 새우젓, 장아찌 정도가 보통이었고 계란 부침이나 소고기 장조림이라면 큰 부잣집 친구들 도시락에서나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점심시간이 기다려졌고 꾹꾹 눌러 담은 식은 거친 보리밥이지만 왜 그리도 맛이 있었는지, 먹고 나도 뱃속은 늘 부족감이었다. 하굣길에 빈 도시락 안에서는 반찬 종지와 젓가락과 알루미늄 도시락이 서로 부딪치며 내는 교향곡이 허기진 뱃속을 더욱 허기지게 했다.
  지난 시절, 쌀이 부족해서 혼‧분식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던 때가 있었다. 대중식당에서도 잡곡 혼식을 의무화했다. 또한, 이무렵 분식집도 많이 생겼다. 이 혼식이행 여부를 확인코자 대중식당은 물론, 검열관들이 예고 없이 학교에도 들이 다쳐 학생들의 도시락을 검열했었다. 그 결과 잡곡 혼합 비율이 기준에 미달한 도시락이 적발되었을 시는 학교장이 인사 조치까지 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 전설 같은 얘기가 되어 버렸다.
  그동안 학교에서 도시락이 사라진 지도 꽤 되었고 실비에 가까운 유상 급식을 해 오던 중 많은 논란 끝에 이번에 일부나마 무상 급식으로 하게 된 것이다. 부잣집 아이들까지 공밥을 먹여야 하느냐는 문제와 그렇다고 아이들 간에 빈부를 따져 유상, 무상으로 가려서 급식을 해야 하느냐는 문제, 급식을 위한 예산 충당 문제 등으로 아직도 개운찮은 문제점들을 안고 출발은 했다.
  그러나 시작하자마자 물가의 급등으로 식자재 수급의 차질이 와서 급식의 질 저하로 새로운 논란이 일고 있다. 무엇보다도 급식 지원비 증액이 급선무다. 결국, 염려했던 대로 올 것이 온 것 아닌가 한다. 교육 복지 면에도 급식 이상으로 시급한 것도 많으련만 왜 그리 서둘렀는지 모르겠다. 도시락을 들고 다니는 번거로움이나 급식비를 매달 따로 내야 하는 부담을 덜어주는 것은 좋으나 그만큼 전체 국민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조선조의 시인 김천택의 시조가 떠오른다. “잘 가노라 닫지 말며 못 가노라 쉬지 마라/ 부디 긋지 말며 촌음을 아껴 쓰라/ 가다가 중지 곧 하면 아니 감만 못 하리라” 여러 가지로 우리의 현실을 생각게 하는 시조다.
  비록 거칠고 감자 덩이가 묻힌 보리밥에 고추장, 새우젓, 장아찌 반찬이었지만, 어머니의 정성어린 손길과 정이 담긴 그 도시락이 지금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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