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대마도에 가다-發

문석흥 2013. 11. 30. 10:20

 대마도에 가다-發


  이봄에 2박 3일간 대마도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평소에 특별히 가보고 싶었던 곳도, 그렇다고 어떤 임무가 있어서 간 곳도 아니었다. 몇 문우들과 봄기운을 타고 여행을 할까하고 어디 가까운 외국여행지를 찾다가 대마도를 택하게 된 것이다.
  대마도는 부산에서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불과49.5Km 떨어진 현해탄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지금은 일본 규수(九州) 나가사키(長岐縣)에 소속된 쓰시마시(對馬市)가 되어 있었다. 남북 82Km, 동서 18Km 총면적 708.3Km²의 길쭉한 모양으로 섬 전체가 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일본 땅이라고는 하지만, 일본에서 제일 가깝다는 하카타로부터는 147Km나 떨어져, 오히려 뱃길로 1시간 30분밖에 안 걸리는 우리와 더 가까운 이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마도는 이번에 처음 가보는 곳이지만 어린 시절, 대마도에 대한 인상이 있다면 고구마처럼 얼굴이 좀 살이 찐, 다부지게 생긴 씨름꾼 같은 사람을 대마도라고 불렀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 가서 보니 어린 시절에 가졌던 인상과는 전혀 달랐다.
  대마도는 옛 삼국시대로부터 고려, 조선왕조에 이르기까지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우리나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던 인연 깊은 곳이었음을 곳곳에서 찾아 볼 수가 있었다.
  몇 가지 간추려 보면, 신라 눌지왕 때 일본에 인질로 잡혀간 두 아우 복호와 미사흔을 구출하고 일보에 잡혀 끝까지 충절을 지키다가 참형을 당한 신라의 충신박제상의 순국비가 ‘사고’항에 있었다.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외동딸인 덕혜옹주가 당시 일본의 압력에 의해 대마도 도주의 아들과 정략결혼을 하여 끝내는 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하다가 이혼한, 덕혜옹주결혼기념비가 ‘이즈하라마치(嚴原町)에 있는 석성공원에 있었다.
  일제에 끝까지 항거하다가 투옥생활을 하던 중 끝내는 대마도에까지 이송되어 와서 병사한 후 고국으로 운구 되기 전까지 시신이 잠시 안치되었던 이즈하라 수선사 경내에 대한제국의 애국지사 최익현 선생의 추모비가 있었다.
  이박에도 역사자료관에는 고대 우리나라에서 전래된 많은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전시관의 큰 대문 앞에는 고려문(高麗門)라고 새긴 화강석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 양국 간의 화해와 친교를 위해 양국 통신사 일행이 12회나 오가며 행사를 치르던 중 마지막 4회는 이곳 대만에서 치렀다 한다.
  본래 대마도는 거리상으로 우리와 가까이 있었고 신라에게는 조공을 바쳤으며, 도주가 통치할 때는 조선에 예속되기를 원했기도 했다한다.
  지금은 부산에서 대마도까지 우리의 여개선이 운행되고 관광객은 거의가 다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그들은 우리 관광객 유치를 위해 우리와 역사적 인연이 있는 곳을 찾아 의도적으로 복원하고 개발한 흔적도 엿볼 수 있었다. 돌아오는 배안에서는 멀어져가는 대마도를 바라보면서 저 땅이 우리 땅이 될 수 있었을 것인데 하는 아쉬운 마음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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