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달과 결혼식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강추위가 좀처럼 물러설 것 같지 않더니만, 입춘 우수를 지내고 나니 맥없이 풀이 꺾이고 3월도 채 되기 전에 어느새 제주로부터 꽃소식이 들려온다. 그와 함께 나에게도 벌써부터 결혼식 주례 부탁이 들어오기 시작 했다. 결혼식은 으레 화창한 봄철이나 청량한 가을철에 하거늘 올해는 이상하게도 봄이 무르익기도 전 아직은 겨울의 끝자락에 걸려 있는 시기인데 왜 이렇게 결혼을 서두는 것일까? 나는 제자들이나 친구의 자녀들 결혼식에 주례를 하지만, 올 3월 4월 중반까지는 토요일 일요일을 거의 주례로 보내고 있다. 내가 직업 주례였다면 대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알고 보니 올해는 음력으로 윤년이어서 음력 3월이 한 달이 더 들어 있어 그 윤3월 달을 피해 결혼 날짜를 잡았기 때문이다. 윤달은 태음력과 태양력의 오차를 보정하기 위해 두는 한 달을 말하는데 그 오차는 3년이 지나면 33일 간이나 모자라게 되어 약 3년 어간으로 윤달을 두는 것이다. 윤달을 드는 해는 어느 달을 한 달 더 두느냐에 대해서는 일정한 규칙이 있는지는 몰라도 열두 달 중 어느 한 달에 고정하여 윤달을 두는 것 같지는 않다. 그 예로 3년 전 2009년 윤달은 5월이었는데 금년 윤달은 3월이 아닌가. 그래서 윤달을 남는 달, 여벌 달이라 하며 심지어는 썩은 달이라고까지 불러왔다. 과학적으로 따지면 윤달을 두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거늘 우리의 조상들은 윤달을 귀신과 결부시켜 윤달은 정상적인 달이 아니고 존재해서 안 될 여벌 달이라 하여 모든 귀신들도 존재할 수 없고 따라서 활동이 정지되는 달이라고 믿어 왔다. 일상생활 속에서 악귀들의 해악을 두려워한 나머지 귀신을 달래고 귀신을 잘 모시고 한편 귀신을 피해서 손(날을 따라 사람을 해하는 귀신) 없는 날을 잡아 중요한 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이와 같이 윤달 에는 생활에 관련된 여러 가지 속설이 많다. 따지고 보면 윤달은 귀신으로부터 해방된 달이다. 귀신이 없는 달이니 아무 때나 편안한 마음으로 날을 잡아 집도 수리하고 이사도 하고, 조상의 산소의 이전이나 사초도 하고, 수의도 장만했다. 그렇다면 결혼식도 일생일대 중요한 대사이고 가문의 경사인데 자칫 귀신이 들어 액을 가져다 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결혼식만큼은 윤달을 피해서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히려 귀신이 없는 윤달이 더 안전할 것이거늘. 만약 부모님이 윤달에 돌아가셨다면 부모님의 혼신은 영영 사라져 제삿날에도 못 오실 것 아닌가? 결혼식만은 윤달을 피하는 데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결혼은 인류의 대사요, 가문의 경사이거늘 돌아가신 조상의 혼신들도 마땅히 오셔서 축하해야 할 일이기에 혼신이 윤달에 묶여서 못 오시게 할 수가 없다는데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귀신을 움직이게 하는 인간들의 이런 교묘한 비법도 있으니 그 지혜가 참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전지전능하다는 신도 때로는 무력할 때도 있고 인간이 하는 일을 모를 때도 있는 모양이다. 어찌 보면 사람이 먼저 귀신 없는 날(손 없는 날)과 귀신이 없는 달(윤달)을 알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 종교적으로나 과학적으로 볼 때 허황된 믿음을 미신이라 하는데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는 미신이 어제나 존재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후진국은 말할 것도 없지만, 선진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불안하고 나약한 마음에서 어디엔가 믿고 바라고 의지하려는 마음 자체야 오히려 실용주의, 현실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보다 순수한 면이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너무 집착하는 데 문제가 있지 않겠는가. 조상의 혼신이 못 온다는 이유로 잡귀가 활동하는 달에, 그것도 손이 있는 날 없는 날 가릴 것 없이 힘들게 토요일 일요일을 잡아 결혼식을 올려야만 하겠는가? 오히려 모든 귀신이 활동을 하지 않는 평화롭고 안전한 윤달(양력 5월)에 함이 얼마나 여유롭고 안전하지 않겠는가. 원효대사가 당나라 유학을 가던 중 어느 빈집에서 자다가 목이 말라서 먹는 물인 줄 알고 마신 물이 아침에 깨어 보니 해골바가지에 고인 썩은 물이었음을 확인하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모든 것은 마음이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유학을 포기하고 되돌아왔다 한다. 윤달에 관한 미신도 마음이 만드는 것이라 여기면 아니 될 일인지? 올해는 윤달 덕에 일찍부터 제자들의 결혼식 주례를 여럿 했으니 나에겐 좋은 일을 많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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