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덴텍스와 포스턴백
문 석 흥
지난여름, 문우들과 함께 1박 2일 일정으로 단양에 가서 그 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돌아보며 잠시나마 더위를 식히고 돌아왔다. 오래간 만에 단양에서 하룻밤을 지내다 보니 40여 년 전 직장 동료들과 버스를 대절하여 3박 4일 일정으로 설악으로부터 동해안을 들아 소백산맥을 넘어 마지막 날 저녁을 단양에서 잤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당시는 지금의 충주호가 생기기 전이라 지금의 구단양이라는 곳이 단양이었다. 명색이 군청 소재지였기는 했으나 도시다운 면모는 없었다. 여관을 정하고 방 크기에 따라 인원 배치를 하고 여관에서 차려 주는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는 각자 취향 따라 화투꾼들은 방에서 화투판을 벌이고, 바둑꾼들은 바둑판을 벌이고, 술꾼들은 술집 찾아 거리로 나섰다. 주인은 우리 일행에게 당부하기를 잘 때는 방문을 안으로 잠글 것과 밖에 나갔다 들어 올 때는 맨 늦게 들어오는 사람이 대문을 잠그라고 했다. 이날은 우리 일행밖에 투숙한 팀이 없었다.
그런데 실상 누가 언제 들고 나는 지 같은 일행 속에서도 행동 통일이 쉽지 않았다. 화투 방에서는 군것질 사러 드나들었고 술꾼들도 한 패가 아니다 보니 1차 마치고 들어오는 패, 2~ 3차 다니며 자정을 넘겨 들어오는 패, 또 들어 왔다가 다시 나가는 패, 정말 제멋대로 이었다.
이런 밤을 보낸 다음날 아침, 이 방 저 방에서 “내 옷 없어졌어!, 내 가방 없어졌어!”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고요했던 여관집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팬티 바람으로 방문 앞 툇마루로 뛰쳐나온 모습들이 가관이었다. 마침 일행 중에 여직원이 한 사람도 없었기에 망정이지 여성 직원이 있었으면 어쩔 번했을까? 방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은 방에 밤손님이 다녀간 것이다. 주로 술꾼들의 방이었다. 여름철이라 막바지나 반바지에 셔츠 차림이었는데 옷 자체야 무슨 값이 나가겠냐만, 주머니에 든 지갑 속에 돈이나 가방 속에 넣어둔 돈 될 만한 물품 등을 노린 것이다.
여관 주인의 신고로 순경이 왔다. 순경은 도난 맞은 방을 점검하고 상황을 청취한 후 도난당한 사람 중심으로 도난당한 돈과 물품의 종류, 가격 등을 물어 기록했다. 그러는 중에 여관집 종업원 남자가 옷가지와 가방을 한 아름 안고 들어왔다. 확인 해 보니 우리 일행의 물품이었다. 밤손님은 방안에 들어가서 옷과 가방을 들고나가 여관 담장 넘어 인적 없는 후미진 곳에 가서 돈만 챙겨 달아난 것이다.
순경은 각자 자기 것을 찾아 가도록 하고 좀 전에 신고한 내용대로 확인을 했다. 돈은 없어졌으니 신고한 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겠지만, 옷이나 가방 같은 것은 바로 확인이 가능했다. 그런데 여기서 검은 속이 들어난 사람이 생겨 망신스러웠다. 찾아 입은 옷은 분명 막바지인데 신고하기는 골덴텍스 신사복 새 바지였다. 또 한 사람은 본래 들고 온 가방은 목수들이 연장 넣고 다니는 미군용 가방인데 외제 포스턴백이라고 신고했다. 건망증이 발동한 것은 분명 아니었거늘…, 다 아는 거짓말이라 둘러서서 지켜보고 있던 일행들은 일제히 폭소를 터트렸다. 긴장한 얼굴로 확인하던 순경은 무슨 영문이지 알 리가 없었다.
그건 그렇고 도난당한 돈은 어떻게 배상을 받아야 하느냐다. 주인이 배상해야한다는 주장, 주인은 문단속 할 것을 주의를 했는데도 일행이 지키지 않았다는 항변,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다. 결국 일행 중 원로 몇 분이 제안 했다. “이제 집으로 가는 일만 남았으니 돈 쓸 일도 별로 없을 것이고 가지고 온 돈 다 쓴 셈 치고 없었던 일로 합시다. 꼭 쓰실 분이 있으면 서무과장 한 테 필요한 만큼 차용하시고요” 라고 하니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자연스럽게 일제히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것으로서 도난 소동은 끝난 것이다.
씁쓸한 마음을 가라안치고 아침 밥상을 받았다. 주인이 미안해서인지 푸짐하게 차려내 왔다. 특별히 해장술도 내와서 쓰린 속을 풀었다. 떠날 때는 푸짐한 안주에 약주도 세병이나 담아 주었다.
여행 후 직장 내에서는 한동안 골덴텍스’, ‘포스턴백’이라는 유행어가 나돌았다. 나는 그때이후 지금도 여행가서 자게 되면 지갑을 베개 밑에 깔고 자는 습관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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