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잔소리 문 석 흥 오전 중 운동을 하고 점심 때 집에 돌아 온 아내의 얼굴빛이 심상치가 않았다. 새벽에 잠 안 자며 올림픽 한 일전 축구를 볼 때만해도 명랑했었는데 왜 운동을 다녀오더니 갑자기 굳어진 얼굴에 입마저도 굳게 닫혀 있는지? 함께 오래 살다 보니 표정만 보아도 대강은 짐작이 간다. 이 표정은 밖에서 원인이 되어 온 것이 아니고 나한테서 온 것임을 직감 했다.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잘 못했다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늘 새벽 한일 축구 전 본 이후엔 별로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아내 또한 아침 식사하고 바로 운동을 갔기에 나와 함께 있은 시간 없었는데 왜 저렇게 변했나 하고 곰곰이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쨌거나 분위기가 이렇게 되었을 때는 전례에 따라 저절로 풀릴 때까지 둘이 다 침묵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이 침묵은 이 날 오후부터 다음 날 밤까지 계속되었다. 말이 그렇지 집안에 식구라고는 단 둘 뿐인데 하루 반나절을 말 한마디 안 건네고 산다는 게 생지옥이 따로 없는 상황이었다. 침묵 둘 째 날은 마침 일요일이자 비가 내려서 어디 마땅히 나갈 곳도 없어 고스란히 이 생지옥의 공간에서 보내야 했다. 어디 탈출구라도 있었으면 하였는데 오후 좀 기울어 휴대 전화 신호가 울렸다. 얼씨구나, 살았구나! 반가운 마음에 얼른 받았더니 이웃에 사는 친구였다. "뭐해! 날도 구진데 술이나 한 잔 하지” 이 얼마나 반가운 소린가. 옷을 갈아입고 나와 우산 받쳐 들고 쏜살 같이 빗속을 뚫고 늘 가는 빈대떡집으로 갔다. 오늘 따라 술 맛도 일품이었다. 거나한 취기 속에 친구와 헤어져 오면서 슈퍼에 들러 막걸리를 두 병 사들고 집에 왔다. 나로서는 화해 주라도 나눌 생각이었는데 아내는 술병을 보고도 여전히 표정을 풀지 않았다. 침묵이 흐른 채 tv만 볼 뿐이다. 이윽고 내가 먼저 술병을 식탁에 꺼내 놓으며 “술이나 한 잔 합시다,” 라고 선 수를 놓았는데도 여전히 굳어진 채 반응이 없었다. 잠시 기다려 보다가 가능성이 없을 것 같기에 포기하고 잠자리로 가는데 그제야 앙칼진 소리로 “얘기 좀 해요!”라고 응사를 해 온다. 어쨌든 부닥쳐야 될 것이기에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아내는 드디어 화가 난 속내를 털어 놓았다. 아내가 화가 난 발단은 아침 식사 때였다. 요즘 날씨가 너무 더워서 주방에서 가스레인지에 밥하고 국 끓이고 볶고 하는 요리를 피하고 간단히 식빵과 우유로 아침식사를 해 왔다. 오늘 아침에는 내가 내 나름대로 식빵에 잼을 발라서 먹는데 아내가 그렇게 먹으면 안 된다며 먹는 방식을 고쳐 주려 하기에 나는 사소한 일에 간섭을 받는 것 같아서 순간 “놔둬! 내 멋대로 먹게!”라며 신경질 조로 응수했다. 나는 그러고 나서 별 감정 없이 식사를 마쳤다. 그런데 아내는 그 순간 몹시 모욕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아내는 비로소 입을 열어 이 상황을 털어 놓으며 한 마디 하기를, “싫더라도 그래 어떻게 먹어야 하는데?”라고 한마디 하면 될 것을 남자가 되어 가지고 그렇게도 아량이 없어요!”라고 쏘아붙인다. 듣고 보니 그 말도 옳고 내가 옹졸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tv드라마에서 젊은 남편 역으로 나오는 유준상이 보여 주는 그 너그러운 모습이 떠오르며 나의 언행에 부끄러운 감이 들었다. 근래에 와서 아내의 잔소리가 많아 진 것은 확실하다. 여자들은 늙어 갈수록 잔소리와 간섭이 많아진다고 한다. 그런데 늙은 아내의 잔소리와 간섭이 오히려 남편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는 요인이 된다는 연구도 있다. 잔소리와 간섭은 당장은 싫지만 그로인해서 자극을 받아 뇌 활동을 촉진 시켜서 생명 연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수족관에 사는 작은 고기들이 바다나 강에 사는 작은 고기보다 수명이 더 길다는 연구도 있다. 그것은 같은 수족관에 사는 큰 고기들한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항상 살피고 큰 고기를 피해 몸을 민첩하게 움직여 운동량이 많아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후부터는 오래 살기 위해서라도 아내의 잔소리와 간섭을 고맙게 여기며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드려야 되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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