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미련인가 아쉬움인가

문석흥 2013. 11. 30. 10:51

미련인가 아쉬움인가


                                                            문  석  흥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지은 지 20년이 좀 넘었다. 외벽이나 골조는 아직 멀쩡한 것 같은데 내부는 장판이고 벽지, 문짝, 전등, 주방 시설 등이 많이 낡아 있었다. 가뜩이나 늙어가는 내 모습도 초라한데 집안 분위기마저 이 모양이라 나나 집안 풍경이나 초록이 동색인 격이다. 20년 전 이 집을 지을 때만 해도 그 당시로서는 KS마크의 최상품 자재로 실내를 꾸몄었는데 이 역시 세월 앞에는 어쩔 수 없이 구닥다리 신세일 수밖에 없는 가보다. 그래서 새로 인테리어를 해 볼까 망설여 오다가 마침 이웃에 인테리어 전문 업자를 알게 되어 큰 맘 먹고 이 사람에게 인테리어를 맡겼다.
  이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집안의 가재도구를 완전히 내가야 하는데 이 작업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이다. 창고나 마당이라도 있으면 들어내다가 쌓아 놓으련만, 그런 여건이 되지 않으니 보통 고민이 아니다. 그래도 작으나마 옥상 방이 있어서 일부는 옥상에 올려다 놓고 계단마다 사람 하나 겨우 지나다닐 정도로 틈을 내고는 여유 공간에 이런 저런 가재도구를 최대한 추켜 쌓아 놓았다. 그러나 장롱은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대로 두고 조금씩 옮겨 가며 작업하기로 하고 소파는 차제에 새것으로 바꿀 셈 치고 내다 버렸다.
  새로 집을 지을 때는 빈 공간이라 내부 인테리어가 쉬운데 살던 집 인테리어는 안에 집기나 살림도구를 다 내 놓아야 하고 낡은 것 뜯어내고 새로 붙이고 달고 깔고 하다 보니 하는 사람도 몇 배 더 힘들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한편, 수리 하는 장장 1주일 동안 이런 난장판 같은 속에서 마치 노숙자처럼 지내는 것도 여간 고역이 아니다. 또 실내 가재도구를 내다 놓는 과정에서도 아내와 적지 않은 말다툼을 벌였다. 집안이 정돈되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막상 집안에 물건들을 꺼내 담고 들어내고 하다 보니 쓸데없어 보이는 잡동사니들이 왜 그리 많은가? 언제 사다 모운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내 눈에는 별로 쓰잘 데도 없는 물건들이 이렇게 많은가 싶어 차제에 다 없애버리라고 짜증조로 아내에게 한마디씩 던지곤 했다. 아내 또한 내 말을 너그러이 사길 리 없다. 나는 주로 그릇들을 꺼내 옮기는데서, 아내는 내 책을 옮기는데서 서로간의 공방이 오갔다.
  그릇이나 책의 공통점이 있다면 수가 많다는 것과 무겁다는 점이다. 그리고 둘 다 풀어 놓고 보면 당장 필요한 것 보다는 대부분 사장시켜 놓은 것 들이다. 게다가 꺼내서 옮기려다 보면  부피도 많고 옮기기에 힘도 많이 든다. 하긴 그릇을 모은 사람은 아내요, 책을 모아둔 사람은 나다. 그래서 둘이 타협하기를 차제에 그릇 쪽에서도, 책 쪽에서도 경중을 가려 대폭 솎아내어 버리기로 했다.
  쓰지 않고 쌓아 둔 그릇이 많은 것도 전에 다 썼던 그릇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명절 때나 잔치 때, 또 장례 때면 다 집에서 음식을 마련하고 손님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그릇이 많이 필요 했다. 때로는 이웃집에서 빌려다까지 썼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 가족 간에도 외식을 할 때도 있고 또 집안 대 소사를 거의 다 전문 식당에 가서 치루지 않는가. 또 가족 구성도 핵가족이라서 주방 활동이 빈번하지도 않아서 많은 그릇이 필요치가 않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지나날 쓰던 그릇이 고스란히 싸여 있게 된다. 또 요즘은 기념품용 그릇도 많아 행사장에서 받아오는 그릇이나 컵 종류도 적지 않다.
  책은 또 어떤가? 직업에 따라 장서량의 차이는 있겠지만, 필요에 따라 사는 책도 있고 증정본으로 받는 책도 있다. 책도 일단 손에 들어오면 읽고 나서 버려지지가 않고 책장에 꽂아 두게 된다. 또 책이 한 권 두 권 늘어가 책장에 꽉 차는 것을 보는 그 넉넉한 마음도 책을 버리지 않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오래된 책도 언젠가는 다시 찾아봐야 할 때가 있기에  쉽게 헌 신짝처럼 버려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아내와 나는 이번 기회에 오래돼 안 쓰는 그릇과 퇴색되고 낡은 별 보존 가치가 없는 책들을 폐기 처분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막상 폐기 대상의 책을 골라내려다 보니 딱히 구별이 되지 않아 몇 번이고 들었다 놨다 망설여지곤 했다. 아주 버리기 보다는 한데 묶어서 창고에라도 가져다 두었으면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창고도 없으니 별 수 없이 폐지 수집하는 사람에게 가져가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내 또한 그릇이고 접시고 냄비고 컵이고 쟁반이고 어느 것 하나 버리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 같다. 책에 비해 그릇이야 퇴색할 이유도 없고 다 그 나름대로 이런 저런 사연이 담긴 것이라 막상 버리려 하니 자식을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심정인 모양이다.
  더 두어봐야 쓸데도 없고 그렇다고 보물이 될 것도 아니고 짐만 되거늘, 막상 버리려 하니 망설여지는 것은 미련인가 아쉬움인가

'수 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력 1.2의 한계  (0) 2013.11.30
강남스타일과 말춤  (0) 2013.11.30
건강 검진  (0) 2013.11.30
여름 철과 반바지   (0) 2013.11.30
올드랭사인’과 ‘찌에호’  (0) 2013.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