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을 맞으며
‘설’이 한주일 앞으로 닥아 왔다. 설은 새해의 첫날이며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음력 정월 초하루를 설날로 지킨다.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전통적으로 지켜 내려오는 명절이 설, 단오 추석, 동지, 정월대보름, 한식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4대 명절이라 하여 설, 단오, 추석, 한식을 들고 있으나 근래에 와서는 설 과 추석만이 전 국민이 지키고 있으며 법정공휴일로 까지 지정 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음력을 써오다가 1895년(을미년), 당시 대한제국 시절 고종황제가 양력을 사용하기로 하고 당일 음력 11월 17일을 양력 1896년 1월 1일로 고쳤다. 그 후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 합병하고 36년간을 식민통치 하면서 우리민족의 전통적인 문화와 역사, 언어까지 말살 정책을 폈고 드디어는 개인 고유의 성명마저 일본식 이름으로 바꿨다. 또한 순수 우리 이름으로 불려오던 마을의 명칭마저도 한 문식으로 바꿔져 지금까지도 고정화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잔다리는 세교리(細橋里)로, 떡전거리는 병점(餠店)으로, 가마뫼는 부산리(釜山里)… 등, 관공서나 학교, 단체 등에서는 이런 일본정책에 어쩔 수 없이 따랐지만 일반 사람들 속에서는 음력을 사용했으며 전통 세시풍습은 감시를 받아 가면서도 지켜왔다.
그러다가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면서 해방을 맞은 우리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서도 계속 양력을 사용하면서 음력을 폐지하지는 않았다. 설만 해도 일제가 양력설을 강요해 왔지만 해방이후에는 떳떳하게 음력설을 지냈다. 5.16 혁명 후 한때 양력 1월 1일을 신정이라 하여 3일간을 공휴일로 제정하여 신정 쇠기를 권장해 왔지만 좀처럼 정착이 되지 않고 대부분의 국민이 구정 설을 지켜 이중과세에 논란이 팽배해 졌다. 그러자 1985년 구정을 ‘민속의 날’로 제정하여 하루를 공휴일고 했고 그 후 1989년 2월 1일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고쳐 음력 1월 1일을 전후한 3일을 공휴일로 지정함으로서 다시 ‘구정’이라는 이름을 떼고 ‘설’로서의 자리로 확실하게 복원된 것이다. 다만 양력 1월 1일은 공휴일로서 ‘신정’이라는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설은 한해의 건강과 풍요를 기원하는 뜻을 담은 우리 고유의 명절이다. 설날이 되면 아침 일찍 일어나 새 옷인 ‘설빔’을 입고 먼저 돌아가신 조상들에게 절을 드리는 차례를 지내고 생존해 계시는 어른들께 세배들 드리며 서로의 행복을 빌고 덕담을 나눈다. 설에는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는 데 그중에서도 떡국을 빼놓을 수 없다. 설날의 떡국을 먹는 이유는 천지 만물이 새로 시작되는 날인만큼 엄숙하고 정결해야 한다는 뜻에서 흰 쌀로 만든 가래떡을 타원형으로 썰어 장국에 끓이고 쇠고기, 꿩고기, 닭고기를 꾸미로 얹어 먹는다. 떡을 둥글게 써는 것은 둥근태양을 상징하는 것이다. 설날의 이 떡국을 먹어야 비로소 한 살 더 먹는 다고 했다. 그리고 설날의 놀이로는 대표적인 게 남자는 윷놀이, 제기차기와 여자는 널뛰기다.
가난했던 시절 설날만이 먹던 별미의 그 떡국, 지금은 언제고 먹을 수 있으니 어린 시절에 먹었던 떡국의 그 맛을 잃은 것 같다. 또한 설을 기해 설빔으로 새 옷 한 벌 생겨 입었던 그 기쁨, 지금은 설빔이란 이름조차 뒤안길로 사라졌다. 윷놀이, 제기차기, 널뛰기는 설날 고궁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래도 설날에 고향을 찾고 조상님에게 차례를 지내고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고 하는 풍습은 남아 있는데 그나마도 대행업체에 의뢰해서 하고 여행을 즐긴다는 뉴스를 보면서 갈수록 설의 의미도 퇴색해 가는 게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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