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男)과 여(女)의 어제와 오늘
단군신화에 보면 천제(天帝)인 ‘환인’의 아들인 ‘환웅’이 지상에 내려와 곰을 여자가 되게 하여 결혼함으로서 ‘단군’을 낳아 자손을 퍼트려 오늘날 우리 민족이 된 것이다. 또 구약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흙으로 빚어 남자인 ‘아담’을 만들고 아담의 신체 일부를 떼어 내어 여자인 ‘이브’를 만들었다. 여기서 보면 최초에 인간은 남자이고 다음에 여자인 것이다. 그래서인가 우리의 인류 역사를 보면 더러는 여왕도 있었지만 대체로 여자는 남자의 종속적 위치에서 살아 왔다.
특히 유교 문화권에서 살아 온 우리는 더 철저했다. 여필종부(女必從夫), 삼종지도(三從之道) 같은 말은 부도의 필수 덕목에 들었다. 여기에 더 해 남녀유별(男女有別), 남녀7세부동석(男女7世不動席)이라 하여 남자와 여자를 철저히 구별하여 내외를 하게하고 이성간의 접촉을
금하게 하는 엄격한 사회 규범 속에 살게 한 것이다. 이는 요즘의 남녀평등 주의와는 상반된 차별의식이요, 각기 있어야할 자리와 가야할 길, 해야 할 일을 명확히 한다는 규범인 것이다.
이런 규범들을 어기는 행동을 하는 것을 죄악시 했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는 이런 전통이 거의 사라져 가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잔존해 있어 현재의 장• 노년기 계층들은 거의 다 이런 시대를 살아왔다. 그 당시는 부부간이나 오누이, 친척 간 외에 이웃이나 외간 남녀가 눈길을 주고받거나 대화도 하지 않았고 더구나 함께 다니기만해도 큰 일이 난 것으로 쑤군대곤 했다. 동네 총각 처녀가 연애라도 했다 하면 이는 큰 죄나 저지른 것처럼 여겨졌다. 초등학교의 동급생 남녀 간에도 내외는 마찬가지였다. 학교에서도 여학생 반과 남학생 반이 따로 있었고. 중•고등학교도 남학교와 여학교 구별되어 있었다. 이 점은 지금도 일부 지속되고 있으며 아직도 우리 나라처럼 여자만이 다니는 여자대학이 존재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몇 되지않는다 한다. 이 뿐이랴 이 땅에 개신교가 처음 들어 왔을 때 짛은 예배당이 ㄱ자 형태로 되어 남 녀가 ㄱ자의 꼭지점에 위치한 강대를 중심하여 양쪽으로 갈라져 서로 보이지 않게 앉아 예배를 보았다 한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가. 남녀의 이성교제도 자유롭고 열차나 버스, 전철의 좌석, 교회의 좌석이 남녀 구분 없이 자유롭게 앉을 수 있고, 학교도 남녀 공학을 하고 학급 편성도 남녀 혼성 반으로 되어 있을뿐더러 남학생 여학생이 짝이 되어 한 책상에 나란히 앉아 수업을 한다. 옛날처럼 남녀가 내외하는 모습을 볼 수없다. 그렇다고 남녀 간에 우려할만한 큰 일이 빈번히 일어나지도 않는다.
그동안 62년간이나 지켜오던 간통죄가 무죄라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이 났다. 이 위헌결정에는 결혼과 성에 대한 의식 변화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형벌로 간통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한편 이 판결에 대하여 간통죄를 폐지하면 혼인, 가족제도의 보장이 어려워지며 성도덕의 문란을 초래 할 수 있다는 반대 여론도 일어나고 있다. 물론, 간통죄가 존재함으로서 기혼자들의 간통 행위를 억제하고 건전한 가정을 유지하는 데 공헌한 바도 있다. 그러나 간통이나 성 문란 행위는 법의 제제유무를 떠나 개인의 도덕성의 문제다.
우리 사회가 선진화 되면서 지난날의 남녀의 성 차별도 없어져 성별 관계없이 직업 선택을 하며 자유롭게 사회 참여를 하는 평등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각자의 위치에서 현명한 판단과 높은 도덕성을 가진 사회의 일원으로써 남녀평등 사회를 잘 가꿔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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