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느림의 문화 發

문석흥 2015. 4. 28. 10:37

느림의 문화  發

 

 

   중국을 흔히 느림의 문화(만만=慢慢)라 한다. 급힌 게 없이 느리고 게으르다는 뜻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는 빨리빨리 문화라 한다. 공식으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그렇게 부르는 것 뿐이다. 그렇다 해도 그 이면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런 문화는 국민성이나 사회 환경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중국 태항산을 관광으로 다녀왔다. 태항산은 중국의 산동성과 산서성의 경계에 위치하며 북에서 남으로 뻗어 남북으로 600km, 동서로 250km나 되는 거대한 산맥이다. 태항산은 이 산맥 속에 일부이며 협곡으로 이뤄져 중국의 그랜캐년이라 부를 정도다. 태항산은 특히 많은 기기묘묘한 봉우리들이 치 솟고 협곡을 이룬 산허리의 바위들은 납작한 구들장 모양을 하며 겹겹이 쌓여 수 십 미터나 되어 보이는 수직 절벽을 이루고 있어 경관이 빼어나고 신비스럽기조차 한 산이다.

   일일이 다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표현할 수는 없지만, 특히 그 험준한 수직 절벽의 암석을 순전히 수작업으로 뚫어 길(괘벽공로=掛壁公路)을 내어 지금은 차가 다닐 정도가 되었으니 중국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지구력과 인내력에 감탄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 동굴 속 길은 고산족 청년 주민 13명이 타 지역 사람들과의 교류를 위해 21년간을 수작업으로 1300m나 되는 동굴을 뚫은 것이라 한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4각의 커다란 창을 뚫어 햇빛이 들어오게 했으며 한편 바로 아래 현기증이 날 정도의 깊은 수직 암벽의 협곡과 건너편 암벽과 산봉우리의 절경을 볼 수 있게 했다. 이 동굴로는 만선산에서 왕망령으로 가는 길로 비나리길이라 하는 데, 이 길은 처음엔 이름이 없었는데 우리나라 비나리관광회사에서 이 지역에 관광을 개척하면서 붙인 이름이라는 데서 더욱 정감이 든다. 태항산에는 이런 동굴로가 한 개 더 있는데 이곳 역시 주민 중에 한 부자가 자비로 주민들과 함께 곡괭이로 작업하여 뚫어서 완공하여 정부에서 이 공을 치하하여 동상을 세운 곳도 있었다.

   말이 그렇지 그 험준한 암벽을 현대식 장비로도 어려울 텐데 곡괭이로 수작업을 통해서 기약도 없이 완공되는 날까지 순전히 마을 사람들의 인력으로 했다니 상상이 가질 않는다. 이것이 바로 중국인들의 만만 정신이 아닌가 한다. 중국인들의 만만은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느림, 게으름이 아닌 황소 같은 느림과 지구력이 아닌가 한다.

   중국은 산뿐 아니라 국토가 워낙 넓다 보니 명절이 되어 고향에 가는 길도 지역에 따라서는 타고 걷고 하면서 보름도 한 달도 걸려서 간다. 그러니 빨리 가겠다고 해서 될 수도 없는 일이니 조급증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는 국토가 좁은 데다 요즘 같이 교통이 편리한세상이다 보니 차만 타면 불과 몇 시간 내에 도달이 안 되는 곳이 없다. 이렇다 보니 더 속도감을 느끼게 되고 매사에 시간 단축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환경 여건에서 사는 중국인과 우리 한국인 사이에 느림의 문화와 빨리의 문화가 형성 된 게 아닌가 한다.

   빠름과 느림은 각 기 장담점이 있기에 특별히 어느 쪽은 좋고 어느 쪽은 나쁘다고 단정을 지울 수는 없다. 다만, 우리의 경우 빨리 문화 속에 남보다 앞서겠다는 욕심으로 지나친 경쟁심과 이기심에서 남을 배려하며 양보하려는 마음이 없는 점이다. 이점은 바로 사회 병리현상으로 발전되며 여러 가지 부작용을 일으킨다. 중국여행 중에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시위 장면이나 반대 구호를 쓴 현수막 같은 것을 별로 볼 수 없었다. 원래 느리다 보니 매사에 감각이 무디고 무관심해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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