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결혼시키면서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하나 밖에 없는 20살 된 아들이 전방 부대에 입대하던 날, 허전한 마음에서 눈시울을 붉혔던 일이 엊그제 같은 데 어느새 그 아들이 제대를 하고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도 갖고 여자 친구도 생겨 순탄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자식이 장성해서 평생의 배필을 만나 혼인을 하여 새가정을 이루고 저들만의 새로운 인생을 출발한다는 것은 경사 중에 경사요 축복인 것이다. 한편, 부모 된 입장에서도 마땅히 할 도리를 다한 자긍심과 안도감으로 기쁨과 함께 홀가분한 마음이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엔 허전함이 자리 잡고 있음은 웬일인가?
결혼 풍속도 전에 비해 많이 변했다. 첫째로 사모관대하고 족두리 쓰고 초례청에서 혼례식을 올리던 재래 전통혼례식은 이젠 거의 사라졌고 턱시도나 양복, 웨딩드레스에 부케를 든 차림으로 전용 예식장에서 서양식으로 치르는 소위 신식 결혼식으로 바꿔졌다. 둘째로 신혼생활도 시댁에서의 출발이 아니라 처음부터 분가하여 단 둘만의 보금자리에서 시작한다. 이렇게 된 데는 그동안의 우리 사회가 산업화됨에 따라 생활양식이나 가족 구조와 가족관계법의 변화에도 영향이 크다. 현대 아파트형 주택 구조는 대가족이 살기에 부적합 하고 가족 구조도 핵가족화 되었고 상속법도 장자에게만 물려 주던 것이 모든 자녀에게 동등한 비율로 하게 된 점이다. 부부의 역할도 남편은 나가 일하고 여자는 전업 주부로서 집안 살림과 아이 키우는 일만 하는 시대가 아닌 맞벌이 시시대가 된 것이다.
옛날에는 실제로 남자는 장가를 들러 처가로 갔다. 장가란 한자로 丈家인데 이는 장인의 집을 일컫는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신랑은 처가에 가서 혼례식을 올리고 처가에서 첫 아이 날 때까지 일을 돕고 살다가 본가로 왔다. 신부 또한 이 시기가 되어야 비로소 시가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구식 혼인은 신랑이 결혼식 날 처가에 가서 혼례를 치르고 바로 신부는 신랑을 따라 시집으로 왔다. 그래서 남자는 장가를 들고 여자는 시집을 간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도 딸 가진 집에서는 딸을 영영 보낸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어서인지 서운한 마음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반면 아들 가진 집은 며느리를 맞는다는 기쁨과 여유로운 마음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마음만일 뿐, 실제로는 결혼과 함께 본가로부터 분가를 하다 보니 양가가 동등한 입장이 된 것이다. 다만 장가들고 시집간다는 표현은 결혼 당사자들만의 독립된 삶을 산다는 데서 현대적 의미로 바뀐 것뿐이다. 그 동안 한 많고 설움 많던 시집살이도, 고부 간의 갈등도 이제부터는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지난 시대를 살아온 어머니들, 어린 나이에 정든 부모님과 형제들이 있는 고향집을, 시집간다는 명분으로 떠나와 낯선 층층시하의 시댁 식구들, 시누이 시동생 들 치다꺼리하며 숨죽이고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출가 외인의 몸으로 불행한 인생을 산 것이다.
짐승이나 새들도 어미는 새끼를 낳아서 지극 정성으로 가슴에 품고 보살피며 키워오다 자력으로 살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떠나보낸다. 식물들도 꽃을 피워 열매를 맺고 나면 다 떨어 버리고 빈 몸만 남아 있다가 슬어지고 만다. 이것이 지상의 모든 생명체들의 삶의 정리(定理) 인 것이다. 서양의 노인들이 우리나라의 자식들이 노부모를 모시며 효도하며 사는 가족 관계를 부러워했다. 그러나 이젠 우리도 그런 시대는 가고 자식을 낳아서 자력으로 살아가도록 키워서 짝지어 독립시킴으로서 세상에 태어난 임무를 다하고 여생을 홀가분한 마음으로 즐기며 살아가도록 설계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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