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만추(晩秋)의 길목에서

문석흥 2015. 11. 7. 07:14

만추(晩秋)의 길목에서

 

 

   11월도 초반이 넘어 어느덧 가을의 끝자락으로 접어들었다. 우리나라는 봄· 여름·가을·겨울 4계절이 뚜렷해서 각 계절마다 각기 특성이 있어 그 특성을 고루 느끼며 이 땅에 사는 우리들로서는 하늘이 주는 축복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런 가운데서도 네 계절 중 어느 계절이 좋으냐고 묻는다면 각기 사람마다 선호하는 계절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봄과 가을을 택할 것이다. 봄이나 가을도 전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한 가지 사람의 체온을 유지하는데 알맞은 기온인 점이 공통점이다. 봄은 따사롭고 가을은 시원해서 특별히 체온관리를 하지 않아도 가벼운 옷차림으로도 활동이 자유로울뿐더러 마음 또한 편안하고 상쾌해 짐이 봄·가을이 주는 매력이다. 게다가 봄은 혹독한 추위 다음에 맞는 따사로움이요, 가을은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 더위 다음에 맞는 시원함을 주기에 더욱 기다려지고 반가움을 주는 계절인 것이다.

   가을을 사색의 계절, 독서의 계절, 우수의 계절이라고도 하고 흔히 듣는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한다. 다 계절이 주는 감각에서 오는 표현인 것이다. 또 한편, 가을은 오곡백과가 무루 익어 거두어들이는 추수의 계절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가을은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두루 풍요로움을 만끽하는 계절이다.

   지금은 겨울의 관문인 입동도 지나고 가을도 저물어 가고 있다. 그 동안 오색으로 아름답게 물들어 사람들의 마음을 황홀하게 하고 그 정취에 흠뻑 빨려들게 했던 단풍도 이젠 볼품없는 낙엽이 되어 뒹굴고 있다. 초가을에 길가나 들녘에 집단으로 피어 한들한들 그 청순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주던 코스모스도 이미 사라진 지금, 그래도 마지막까지 찬 서리를 맞아가면서도 고운 자태로 피어나 그윽한 향내를 뿜어 주며 마지막 가는 가을의 쓸쓸함을 감싸주는 국화는 가는 가을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는 듯싶다.

국화를 보면서 조선조 후기의 문신 이정보의 시조가 떠오른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三月東風) 다 보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네 홀로 피었는고,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 뿐인가 하노라. 여기서 오상고절은 모진 서릿발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외롭게 지키는 절개란 뜻으로, 국화의 아칭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국화를 군자의 덕목이요, 충신을 상징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화는 시인 묵객들의 작품 소재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만추의 길목에서, 가는 가을을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모습으로 지켜주는 국화의 오상고절을 음미하며 아직 남아 있는 가을의 정취에 젖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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