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일흔 두 살 광복절

문석흥 2016. 8. 14. 16:39

일흔 두 살 광복절

 

 

   해마다 맞는 815일 광복절이 올 해는 나이로 치면 벌써 일흔 두 살이 되었다. 필자가 맞은 광복절은 열 살, 당시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그 때는 광복절이라는 이름이 아니고 해방이라 했다. 열 살 어린 나이라 해방의 깊은 의미는 잘 몰랐어도 어렴풋이나마 일본이 전쟁에서 패망하고 조선은 독립한다.’라는 내용의 어른들의 이야기를 별 느낌 없이 들었을 뿐이었다.

   당시 필자는 만주에서 해방을 맞았기에 얼마 안 되어서 바로 부모님 따라서 고향인 한국으로 떠나와야 했다. 압록강을 건너 북한 땅에 들어서니 거리마다 소련 군인들이 활보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당시 소련군을 로스케라고 불렀다. 그들은 무질서할뿐더러 사람들로부터 돈과 물건을 빼앗고 심지어는 야간에 여자들을 겁탈하기도 했다. 치안 유지가 안 된 무법천지나 다름없는 상황이라 승전국 군인들의 점령지에서의 횡포라 할까? 그래서 그들이 눈에 띄면 적당히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교통도 마비 상태라 운 좋게 서울로 가는 화물열차라도 만나게 되면 타고 가다가 도중에 내리게 되면 걷기를 거듭하며 38선 경계에 당도하니 역시 소련군이 남으로 가는 사람들을 일일이 검문검색을 하고 통과 시켰다. 이때까지만 해도 남북 간의 왕래는 되었으나 남한에 미군이 진주 하면서 바로 북위 38선을 경계로 남북의 분단이 시작 되었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생각지도 않게 국토가 반으로 잘리고 가족이 남북으로 헤어진 채 자유롭게 오고 가지도 못 하고 서신교환도 전화통화도 못하며 70년을 넘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불행한 민족이 지구상에 우리 밖에 어디 또 있겠는가.

   어찌되었던 이 분단의 원인은 당시 연합군의 승전국인 미국과 소련이라 할 수 있다. 패전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한다는 명분으로 한반도의 중간을 지나는 북위 38도선을 잠정적으로 그어놓고 북에는 소련군이 남에는 미군이 진주한 것이 결국은 분단의 씨앗이 되고 만 것이다. 당시 모스코바 3상회의에서 일본의 항복을 받은 후 한반도를 일정 기간 신탁통치를 할 것을 결정 했으나 찬탁 반탁 양 진영으로 대립이 되어 서로의 이해관계를 주장하다가 신탁통치 안은 무산 되였다. 이런 미·소 열강의 대립 속에 당시 독립운동을 해왔던 우리의 애국지사들 사이에도 이에 휩싸여 대립하다가 결국 남북으로 각기 다른 이념의 국가를 세우게 됨으로서 분단의 비운을 맞게 된 것이다.

  그 당시 미국이 좀 더 지혜로운 판단을 해서 무장해제를 위한 미·소간의 경계선을 38선이 아닌 한만 국경선으로 정했거나 아니면 한반도가 아닌 패전국 일본을 분할 점령했었더라면 지금의 이런 한반도의 분단 사태는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와서 남을 탓을 하면 무엇 하랴. 해방당시 우리의 민족 지도자들이 이념으로 분열 되지 않고 일치단결해서 통일 정부를 세울 노력을 했더라면 불가능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부  분열과 반목, 앞으로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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