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품 세 가지-發
전에는 꼭 그러지는 않았는데 요즘은 외출할 때 반드시 세 가지의 휴대품을 주머니에 챙겨 넣고 나간다. 그 하나는 집 열쇠요. 또 하나는 휴대전화요, 나머지 하나는 신분증과 돈, 신용카드가 든 지갑이다. 식구가 단출하다 보니 각자의 볼 일로 각기 외출을 하다보면 집 볼 사람이 없어 마지막으로 나가는 식구가 문을 잠그고 나간다. 따라서 집을 들고 나는 시간이 제각기 달라 식구마다 집 열쇠를 지니고 다녀야 한다. 그러나 집을 나설 때 늘 입던 옷을 바꿔 입거나 깜박 잊고 열쇠를 미처 챙기지 못하고 나갔다가 집에 돌아 왔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고 문은 잠기고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 난감할 때를 경험한 적도 가끔 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비상 열쇠를 우편물 함 구석이나 화분 밑 같은 곳에 숨겨 두었지만 이는 다 아는 비밀이 되어 버려서 오히려 도둑에게 집을 내맡기는 어리석은 짓이라 비상 열쇠를 숨겨두기 조차 어렵다. 요즘은 지문 인식 장치를 설치해서 열쇠가 없어도 손가락을 대면 열리도록 된 문도 있지만 우리 집은 아직 그렇지가 못하니 정신 차려 꼭 열쇠를 지니고 다녀야 한다. 휴대전화도 요즘 웬만한 집에서는 식구들이 다 하나씩 가지고 있다. 이 또한 외출할 때 깜박 잊고 집에 그냥 두고 나갈 때가 있다. 가까운 이웃에 나갔을 때는 별 문제가 없는데 멀리 외지에 나가 있을 때는 정말 난감하고 불안하기 이를 데 없다. 특별히 사용할 필요가 없는 데도 그렇다. 이럴 때는 집에 있는 가족들도 마찬가지 심정이다. 휴대전화는 가족 간에 서로 떨어져 있어도 언제 어디서나 대화를 이어 주기 때문에 손안에 든 안방이다. 게다가 문자까지 교신 할 수 있으니 옛날 전신국이나 다름이 없다. 요즘은 집을 나설 때면 아내가 먼저 휴대 전화를 챙겨 준다. 또 뭐니 뭐니 해도 길을 나서면 주머니에 돈이 어느 정도 있어야 마음이 놓이고 든든하다. 요즘은 신용카드가 있어서 그 것이 돈이나 같은 역할을 하니 둘 중 하나는 꼭 있어야 한다. 예전엔 주머니에 돈이 없어도 단골집에 가면 외상장부에 달아 놓고 얼마든지 외상을 할 수 있으니 주머니에 돈이 있고 없고 크게 염려할 바가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신용카드는 외상값 떼어 먹히거나 월급날 외상값을 받으러 다닐 필요도 없는 틀림없는 외상장부인 것이다. 게다다 갑자기 현금이 필요해도 현금 인출기에 넣고 원하는 액수만큼 뺄 수도 있고 상대편 계좌로 보낼 수도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 물건인가. 그리고 신분증은 옛날처럼 검문이 심하지 않으니까 꼭 제시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크게 일상적인 용도는 없으나 그래도 지하철을 탈 때 노인 우대권을 받으려면 제시해야 하니 이때를 위해서도 반드시 넣고 다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다 사람들이 필요와 편리에 의해서 만들어 진 것인데 이들 자신은 생명력도, 행동력도 없는 물건들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사용 빈도가 높고 이에 의존도가 커지다 보니 자연 사람들이 이들에게 노예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엔 집을 비울 때는 대문 고리 걸고 숟갈 하나 꼽아 놓으면 그 것만으로도 누가 접근을 하지 않았다. 돈이나 먹을거리가 넉넉지 않았어도 서로 빌려 주고 외상도 잘 통했다. 휴대전화 같은 것은 있지도 안았으니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차라리 마음 편하게 잊고 살았고 그러다 만나면 그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비록 잘 먹고 잘 사는 삶은 아니었어도 편안하고 인심 후하고 마음의 여유로움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풍요로움 속에 살면서도 마음은 늘 조마조마하고 번거로움이 떠나질 않는다. 그래서 열쇠와 휴대전화와 지갑을 항시 몸에 지녀야 그나마 좀 마음이 놓이는 가보다. 아마도 이 시대는 풍요로움이 가져다 준 이런 요물들에게 무두가 다 홀려서 사는 모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