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척이 천리
여러 해 만에 두 번 째 수필집을 펴내게 되었다. 책을 펴내면 원근 각지에 있는 나를 아는 문우들과 친지 선후배들에게 졸저지만 우편으로 또는 기회 닿는 대로 직접 전한다.
그런데 우편으로 전한 책 중에는 반송되어 오는 경우도 더러 있다. 수취인 불명이거나 주소불명이 그 이유다. 이럴 때는 실망이 적지 않다. 다시 그 주소로 보낼 수도 없는 일이고 직접 찾아가 전하기에는 거리가 멀고 그렇다고 책을 다른 사람에게 주려해도 그 책에는 이미 받는 이의 이름과 나의 사인이 있으니 그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반송된 책들은 거의가 주소지가 아파트다. 아파트는 ‘동’이 한 마을과 같고 ‘호’는 단위 가옥이나 같은 것인데 00아파트 00동 00호 라고 분명히 표시하면, 시골의 00면 00리 00번지라고 한 것보다도 정확한 것이다. 그러나 동이나 호의 수치 하나라도 틀리는 날이면 즉시 미아가 되어 영영 사라지거나 되돌아오기 일쑤다. 그렇지만 시골은 주소의 번지수가 틀리게 적히거나 아예 적지 않았더라도 그 우편물이 미아가 되어 사라지거나 되돌아오는 경우는 없다.
무슨 이유일까? 이웃 간의 분위기 문제일 것이다. ‘지척이 천리’라 했듯이 아파트라는 곳, 벽 하나 천장 하나 방바닥 하나 로 칸막이 하여 연접된 집이라 가깝기는 더없이 가까워도 이름도 얼굴도 나이도 직업도 모르고 산다. 그에 비해 시골 동네는 띄엄띄엄 떨어져 살아도, 번지 같은 것 잘 몰라도 사람이 살고 있는 한 우편물이 미아가 되는 경우는 없다. 집배원도 마을 사람들 이름을 다 알고 이웃 간에도 서로 오가며 정을 나누며 산다.
아파트는 나와 내 가족만이 사는 곳이기에 이웃이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럴 필요성 못 느끼고 사는 삭막한 곳이다. 우편물 따위 내게 온 것이 아니면 찾아 줄 마음의 여유가 없다. 내 우편함에서 그냥 뽑아 놓으면 그만이다.
요즘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피해 현장에는 대통령 후보자를 비롯해서 전국 각계각층에서 연일 찾아와서 내일처럼 기름덩이를 건져내고 기름 묻은 돌을 닦아 내는 정성과 인정이 넘치는 감동을 준다. 이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인정이 메마르지 않았구나 하는 따뜻함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같은 동 아파트에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며 사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이름도 얼굴도 모르며 살아가는 것일까?
가시적이고 전시적인 면에 마음 쓰기에 앞서 이웃 간에 길 잃은 우편물 하나 주인 찾아 주는 작은 정성이 진정어린 정이요 봉사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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