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사람들-發
새해를 맞을 때는 가야할 1년이 까마득하게 보이더니 마지막달 끝자락에서 뒤돌아보면 너무도 세월이 빠름을 실감한다. 그뿐이랴 나이 들어 고희를 넘기고 나니 지나온 세월이 바로 엊그제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며 마음은 아직도 그 세월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어린 시절 기차를 처음 탔을 때, 차안에 있는 나와 다른 모든 사람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을뿐더러 기차도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데, 차창 넘어 들과 전봇대들이 빠른 속도로 뒤로 달려가는 그 희한한 광경에 한참 도취되어 있었던 일이 기억된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도 흘러가는 세월만 보였지 자신이 늙어가는 것은 못 느끼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빠르고 느림은 사람들의 느낌일 뿐 세월이야 무슨 변화가 있겠는가. 한정된 수명 때문에 그 수명이 다 되어 이 세상을 떠나는 게 두렵고 아쉬워서 하는 소리가 아니겠는가. 특히 노령기에 든 사람들은 다가오는 종말에 대하여 전에 없이 소심해진다. 어떡하면 떠나는 길을 고통 없이 편안하게 맞을까 하는 것이다. 요즘 들어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의 부음이 자주 들려온다. 옛날 같으면 고희를 넘겨 살면 장수했다 하고 호상이라고 오히려 축하를 할 정도였지만 요즘 고희 정도의 나이에 떠나면 아쉽게 여긴다. 한 때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지금은 10년을 더 뛰어 넘어 ‘인생은 70부터’라며 스스로 추켜세운다. 그러나 다 부질없는 자위일 뿐, 떠나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 솔직히 요즘은 부음을 듣고 문상가기가 꺼려진다. 소도 도살장에 들어갈 때는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다. 그런 심정에서 일까? 어쨌든 다녀오면 한동안 울적한 마음이다. 또 한 가지, 이것은 다른 차원이지만 고인과는 평소 너무도 자별하게 지냈거늘 그의 유족들과는 일면식도 없었던 터라 애석함과 위로의 말을 전해도 그 진정어림이 피차간에 서먹한 느낌이다. 이 길로 돌아서 나오면 저 유족들과 나는 알 바 없는 남이 되고 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속담에 ‘대감 죽은 데는 안 가도 대감 딸 죽은 데는 간다.’ 라는 게 있다. 고인의 떠남을 애석해 하고 명복을 빌기 위한 문상도 의미가 있지만 그 유족과의 지속될 인연 관계에도 고려한 문상의 의미가 더 큰 면도 없지 않은 것이다. 죽은 후에야 무엇을 알고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내가 떠나고 나도 내 영전에 나를 아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진정 나의 떠남을 애석해 하도록 하려면 평소 가족들과의 친숙히 지냄도 소홀히 해서는 아니 될 일일 것 같다. 옛 어른들이 이웃 어른들을 자주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라고 당부했던 그 참 뜻을 새삼 되 새기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