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
신용카드를 발급 시청을 하고자 은행에 갔다. 차례가 돌아와서 창구에 나가 여직원이 주는 신청서 용지를 받아 기재 난에 기재해야할 내용들을 써서 전했다. 그런데 이 신청서 용지를 받아든 여직원이 하는 말이 “할아버지, 참 글씨를 잘 쓰시네요.”라며 미소 머금은 얼굴로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사무를 계속했다.
가끔 행정관서나 은행에 가서 민원신청서를 제출하지만 창구 여직원으로부터 글씨 잘 썼다는 얘기를 들어보기는 처음 있는 일이다. 물론 싫지는 않았다. 요즘은 문서 작성하는데 간단한 기재사항을 쓰는 경우이외는 손으로 직접 쓰는 경우가 거의 없다. 모두가 컴퓨터에 의해 활자로 작성한다. 컴퓨터가 보급되기 이전에는 타자기나 필기를 함께 이용했고 타자기가 나오기 이전에는 전부 필기에 의해 작성 했다. 이것이 불과 2.30년 전 일이다. 이 짧은 기간 동안에 이렇게 사무가 기계화 되고 자동화 된 것이다.
이젠 필기로 문서를 작성한다는 것은 아득히 먼 구시대의 얘기가 되었다. 심지어는 편지도 자필이 아닌 활자로 된 인쇄물로 작성한다. 이러다 보니 글씨를 쓸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글씨를 잘 쓰고 못 쓰고 평가할 가치도 느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쓰기는 거의 그 기능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이다.
. 글씨도 지문처럼 사람마다 각기 그 필체가 다른 법이다. 그런데 요즘 신세대 젊은이들의 글씨 쓴 것을 보면 모두가 똑 같이 글씨가 작고 오종종하며 네모지게 써서 개인별 필체의 특징도 없고 필기체로의 멋도 없다. 이것은 활자문화에 익숙해진 신세대들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글씨를 쓰는 것도 타고난 솜씨가 있어 악필, 달필, 명필이 있다. 웬만한 사람이면 잘 쓰려고 노력하면 명필까지는 못되어도 악필은 면할 수가 있다. 옛날에는 달필, 명필들의 전성기였지만 지금은 컴퓨터시대를 맞아 그 실용 가치를 잃고 퇴화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문자를 사용하는 한 쓰기를 완전 소멸시킬 수도 없는 일이다.
며칠 전 신문에 어느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쓰기 연습을 강화시켜 전교생이 다 수준급의 글씨체를 익혔다는 기사를 읽었다. 지금도 이런 교장선생님이 계신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시대 흐름에 따라 생활문화가 바뀌고 또 그에 맞춰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생존의 법칙이기도 하지만 그 새문화의 뿌리가 되는 기존의 문화를 당장 소용이 없다고 소홀이 하거나 잃어버린다면 후일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사라저가는 우리 한글의 아름다운 글씨체를 되살리려는 어느 교장선생님의 정성에 경의를 드리며 나의 글씨를 보고 글씨를 잘 쓴다고 한 은행 여직원에게도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