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구구팔팔이삼사와 육복-發

문석흥 2013. 11. 29. 22:09

구구팔팔이삼사와 육복-發
                        

                                                            

  요즈음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참 의미 있고 익살스런 말들이 많이 유행되고 있다. 현직에서 은퇴한 노년층들이 회식 자리나 주석에서 건배 잔을 들고 외치는 구호 중에 ‘구구팔팔이삼사(9988234)’라는 게 있다. 처음엔 9988만 있더니 언젠가부터 234가 더 붙어서 한결 더 말의 맛을 돋워 준다.
  즉, ‘99세까지 팔팔(88)하게 살다가 2.3일 앓고 죽는다(4=死).라는 뜻이다. 좋은 세월 다 보내고 이제 살아야 할 날이 많이 남지 않은 노인들로서는 이렇게만 된다면 오죽 좋으랴. 꼭 9988이 아니더라도 마지막 가는 길에 못된 병에 시달리며 자신은 물론 가족들에게까지 고통을 주면서 오래 살까 봐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2.3.4라는 말을 덧붙인 모양이다.
  ‘생로병사(生老病死)’라 했듯이 살다가 늙어 병들어 죽는 것은 인력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요, 불교에서는 이를 인생의 고(苦)라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득도를 한 성인(聖人)들이 아니고서야 범인(凡人)들이 어찌 이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이런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적당히 사시다가 편안히 저세상에 가십시오. 라는 인사를 받기보다는 ‘만수무강 하십시오’ 라는 인사가 더 달갑게 들리는 게 노인들의 심리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 속에서는 ‘조실부모(早失父母)’ 라는 말이 유행한다는데 참 섬뜩하면서도 한편 재미스런 말이다. 이 말을 기존에 있던 ‘5복’에 추가하여 ‘6복’이라고 한다는 것이다.’조실부모‘를 해야 하루라도 빨리 부모 유산을 상속 받아 마음대로 돈 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전에도 없는 떠도는 말들은 요즘 우리 사회의 실상을 풍자한 말이겠지만 나름대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소득이 증대하고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의료기술이 발달됨에 따라 사람들의 수명이 급격히 늘어나 우리나라도 평균수명이 70세를 넘긴지가 이미 오래다. 현재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8%나 된다고 한다. 그에 비해 출산율은 점점 낮아지고 있어 앞으로 경제활동 인구의 감소가 필연적으로 다가오고 있음은 결코 간과할 일이 아니다.
  자식이 노부모를 부양하고 한 지붕 안에 사는 시대는 이제 지나가고 있다. 무작정 ‘9988234’만 외칠 게 아니라 미리미리 그렇게 되도록 대비를 해야 할 것이고, ‘조실부모’만을 기다릴 게 아니라 자수성가 할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비록 뿌리 없이 떠돌아다니는 신조어들이지만 신판 속담이라해도 될 듯싶다. 믿거나 말거나, 듣거나 말거나 할지라도 각박한 삶 속에 한 줄기 여운을 주는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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