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아쉬움은 여운으로

문석흥 2013. 11. 29. 22:19

아쉬움은 여운으로
  


  며칠 전 친구 하나가 졸지에 세상을 떠났다. 떠나기 전 날 저녁만 해도 친구들과 같이 저녁식사도 하고 술도 한 잔 잘 나누고 헤어 졌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친구의 딸로부터 운명했다는 전화를 받고 보니 좀처럼 미덥지가 않고 정신이 멍하며 손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림을 느꼈다.
자세한 사인은 나중에 알았지만, 아침에 늘 가던 대중목욕탕에 갔다가 별 이상한 징후도 없이 탕 안에서 탕 벽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잠자듯이 숨을 거뒀다는 것이다. 심장마비를 일으킨 것이다. 누구에게도 남긴 말 한 마디 없이, 아무도 지켜보는 사람 없이 이렇게 허무하게 간 것이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자상하며 성품이 온유하여 생전 누구와 말시비를 하는 경우도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친구도 많고 친목 모임도 많았다. 옷  매무새도 용모도 늘 단정하고 주변 정리도 말끔해서 어디 한 구석 허술한 데가 없었다. 친구들과 식당에 가서 회식을 해도 가위를 가져다가 손수 긴 김치를 먹기 편하게 자르고 고기에 시커멓게 탄 부분을 잘라내고 식사가 끝날 무렵이면 어김없이 이쑤시개를 가져와 일일이 나눠 주었다.
  노래방에 가면 마이크를 독차지 하다시피 하며 노래도  즐겨 불렀고 율동도 잘 하며 술도 적절히 마시는 등 풍류도 즐길 줄 아는 멋쟁이였다. 좋은 점만으로 똘똘 뭉친, 정말 인간미 있고 정이 넘치는 친구였다. 그랬기에 그를 잃은 것이 더 애석하고 못내 아쉬움이 남아 아직도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것 같고 금시라도 전화로 그의 음성이 들려올 것만 같다.
  사람들로부터 욕 많이 먹는 사람이 명이 길다는 속설이 있다. 또 잘 익은 과일이 먼저 떨어진다는 말도 있다. 그래서인가. 생전 누구에게 욕먹을 사람도 아닐 뿐, 남을 괴롭힌 사람도 아니다. 그저 다정다감하고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겼던 그였다.
  요즘, ‘구구팔팔이삼사’라는 유행어가 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앓다 죽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 더러 그런 복된 종말을 맞는 사람도 있지만 지극히 드문 일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누가 늙기를 두려워하고 죽기를 서러워 할 것이며 예서 무슨 미련이나 여한이 있을 것인가.
  마지막 가는 길에 며칠만이라도 병석에 누워, 가족들의 정성스런 효도의 기회마저 주지 않고 유언 한 마디 없이 가는 것이 아쉽다하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욕심에 불과한 것, 그렇게 한 점 유감없이기보다는 오히려 못다 한 아쉬움은 긴 여운으로 가슴 속에 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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