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發
정년으로 은퇴한지도 벌써 10년 가까이 되어 온다. 천직으로 알고 40여 년을 외길을 걸어오다 정년이라는 덫에 걸려 더 못 가고 바깥세상으로 나왔으나 달리 뭐 할 게 있겠는가. 처음에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행도 하고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어울려 술자리도 하고 가끔씩 하루 교외로 야유회도 나가고 좀 더 크게는 해외여행도 하며 제법 삶을 즐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일상은 될 수 없는 일이다. 소득이 있는 직업 활동을 하거나 나만이 심취해 할 수 있는 취미나 특기활동으로 일상생활을 하지 않는 한 백수(白手) 신세에 불과한 것이다. 다행히 젊은 나이가 아니라 백수에 건달 자가 붙지는 않겠지만, 육신이 아직 건강하면서 정해진 일거리가 없이 하루하루 보내는 그 무료감은 백수가 되어 보지 않고서는 누가 알랴. 그래서 요즘 이런 은퇴 노인 백수들의 일상을 풍자한 유행어가 있다. 그것은, 은퇴한 백수들이 다니는 세계 유명 4개 대학이 있는데 그 1은 ‘하버드 대학( 하루 종일 드나든다는 뜻)이요, 그 2는 하와이 대학(하루 종일 와이프 곁에만 붙어 있는 다는 뜻)이요, 그 3은 동경 대학(동네 경로당에 나간다는 뜻)이요, 그 4는 방콕 대학(온 종일 방안에 콕 박혀 있다는 뜻)이다. 왜 하필이면 대학을 갖다 붙였을까? 대학은 예나 지금이나 초․중․고처럼 아침 시간에 등교하고 오후 시간에 하교 하는 것이 아니고 각 자가 수강 신청한 학과의 강의 시간에 맞춰 가기 때문에 등하교 시간이 불규칙한 것을 보고 옛날 대학을 못 다녔던 일반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대학생이란 제대로 공부도 안하고 건달처럼 노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먹고 대학생‘이란 유행어 가 그 당시에도 나돌았다. 아무튼 은퇴자들이 백수가 되어 가는 과정을 그럴 듯하게 풍자한 말이다. 요즘도 어쩌다 오랜만에 아는 사람을 만나면 건네 오는 인사가,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이다. 이럴 때 선 듯 대답할 말이 궁하다. 뭐 특별이 정해 놓고 하는 일이 없다 보니 마땅한 대답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주 없는 것도 아니지만, ~~위원이요, ~~고문이요, ~~이사요, ~~회장이요 라고 해 봤자 다 유명무실한 직함일 뿐, 상대편이 자세를 바로 할 정도의 위력을 발할 만한 것이 못되기에 그저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정도로 마무리 하고 만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자신의 인생 설계를, 정년을 기점으로 정년 전과 정년 후의 2원 설계를 해야 할 것 같다. 이것은 정년 후 백수 4개 대학과정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야 할 필수 과제일 것이다. 나도 지금 어쩔 수 없는 백수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원고 청탁도 받고 글이라도 써서 발표할 정도이니 필수(筆手)는 될 지언 정 순전한 백수(白手)는 아니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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