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운동 길에 만나는 사람들
새벽이면 늘 걷기운동을 한다. 집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드넓은 농경지가 바다처럼 시원스레 펼쳐진다. 좀 아쉬운 점은 산이 없음이다. 그래도 여름철이면 봄에 심은 모 포기가 진한 녹색으로 온 들판을 물들이며, 가을철이 되면 벼이삭이 알알이 익어 황금 들녘의 정취가 마음을 넉넉하게 감싸준다. 그 드넓은 들녘과 도심 외곽을 시원스럽게 뚫고 나간 도로를 따라 새벽의 맑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50분 정도 걷고 돌아오면, 몸도 개운하고 기분도 상쾌하며 밥맛도 아주 좋다.
요즘은 사람마다 건강과 취미 생활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져서 인지 등산하는 사람도 많아졌고, 이른 아침이면 공원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운동이나 산책 등으로 몸을 단련하는 일이 일상화되어 있는 것 같다. 특히 등산을 하다보면, 등산인들 끼리 스쳐 지나가며 서로 알고 모르고 간에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눈다 "수고하십니다. 정상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등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힘든 산행에서의 고독감을 서로 위로하며 용기를 준다.
그러나 산책길에서 만날 때에는 서로 아는 사람 이외에는 야속하리만큼 무관심한 표정으로 그냥 지나치고 만다. 험하고 깊은 산 속 길처럼 고독감이나 힘이 들지 않아서 일까? 피차 운동 길이지만 자주 만나 낯익은 얼굴임에도 서로 간에 간단한 인사의 말은커녕 표정의 변화조차 전혀 없다. 내가 그렇게 느끼거늘 상대편도 나와 똑같은 느낌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인사를 하는데 왜 그렇게 인색하다는 말인가. 비록 평소 지면(知面)이 있는 사이는 아니더라도 서로 간에 나쁜 감정이 있지 않는 한 어느 쪽에서라도 먼저 가벼운 인사라도 하면 될 텐데, 왠지 그 마음의 문이 쉽게 열리지 않는 것이다. 때로는 내가 먼저 그렇게 하고 싶어도 이미 여러 차례 본 사람인지라 뒤늦게 인사를 한다는 것이 새삼스럽고 쑥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하려니와, 또 섣불리 먼저 그랬다가 상대편에서 아무 반응이 없으면 그 무안함을 또 어찌 감당하나 하는 소심한 마음에서 그나마도 실행을 못하고 여전히 그냥 지나쳐 가곤 한다.
초면인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말을 건넨다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이것도 사람마다 타고난 성품인지라, 흔히 말하는 내향적인 성품인 사람은 그런 용기가 없다. 그러기에 대인관계에서 본의 아니게 소외되고 때로는 거만한 사람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동양 사람들이 서양 사람들에 비해 무표정하다고 한다. 이는 도덕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유교 문화권에서 살아오며 굳혀진 성품이 아닌가 한다. 이로 인해 자기감정을 되도록 겉으로 나타내지 않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되어 인사의 인색함도 그런 감정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어쩌다 길에서 낯모를 서양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으레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꾸뻑하며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된다. 처음에는 '참 별 싱거운 사람도 다 있네' 하며 웃음도 나지만, 그네들의 인사 습성이 우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니, 이런 면에서는 우리의 무표정함이 오히려 부끄러운 감이 든다. 표정이 밝고 인사성 있는 사람이 누구에게나 호감을 받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구나 왜 먼저 그렇게 못하는 것일까?
육신의 건강을 위해 등산도 하고 산책도 한다면,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 간에 서로 반가움과 신뢰감을 주며 동시에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는 다정한 인사말 한 마디 먼저 못 건네는 이 옹색한 마음속에 무슨 건강이 깃들겠는가. 그러나 오늘 아침 산책길에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여전히 그냥 지나치는 내 이 옹색한 마음을 자책해 보지만, 좀처럼 그 마음을 풀 용기가 나질 않는다는 것이 요즘의 내 고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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