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제(時祭)
매 년 음력 10월이 되면 문중별로 선대 조상의 묘소에 가서 제를 올린다. 이를 시제라 하기도 하고 시향(時享)이라 하기도 한다. 내려오는 전통으로 보면 5대조 이상의 직계 선조의 묘소에서 지내는데 종손이 주가 되어 지내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종중에서 주관하여 지낸다.
5대조 이상의 선대의 묘소를 아직도 보우하고 해마다 10월이 돌아오면 시제를 올린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뿐이랴, 매년 한식이나 추석 무렵이면 묘소에 가서 벌초도 하고 묘역을 다듬고 정결케 한다. 이렇게 관리 유지를 위해서 그에 따른 경비가 필요하기에 위토도 있어야 하고 관리인을 두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은 위토를 경작하며 묘소도 돌보고 시제 날이면 제수를 마련하는 묘소 관리인도 없거니와 그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도 없다. 옛날에는 먹고 살기가 어려운 시절이니까 빈한한 층에서 이 일을 맡아 했고 또 대를 이어 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은 대부분 다 종중에서 직접 관리한다. 이젠 호적법이 바뀌어 성씨도 바꿀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만 그러나 시제를 지내는 현장에 가 보면 씨족의 계승과 그 존엄성은 대단하고 절대 불변함을 느끼게 해 준다. 이 씨족의 계승과 그 가계도는 족보로 이어 내려오며 2~30년 주기로 재편한다. 이는 새로 태어나는 후손들을 등재시킴으로서 대를 확실하게 이어가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명명백백하게 한 조상으로부터 수 십대를 이어 내려온 이 엄연한 가계를 현실 논리로만 따져서 무시할 수만도 없을 것 같다. 조상 숭배와 가문의 혈통 계승을 신앙처럼 여겨왔던 이 민족의 그 뿌리 깊은 전통은 쉽게 끊어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시대의 흐름 속에서 많이 퇴색해 가고 있음도 사실이다.
요즘은 납골묘를 만드는 새로운 풍조가 생겼다. 그 납골묘 안에는 유골함을 안치할 수 있는 단을 많이 해서 윗대 선조에서부터 앞으로 드실 분들의 안치할 자리까지 여유 있게 설계되어, 그 납골묘 하나가 한 가문의 묘가 되어 대대로 이어 가게 되었다.
납골묘는 납골당과 함께, 매장으로 인한 국토가 묘지로 침식되어 감을 방지하기 위해 근래 생긴 장묘 제도이며, 따라서 화장율도 50%를 넘고 앞으로도 증가 추세임을 감안할 때 바람직한 제도가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5대조 이상 선조들의 묘소에서 지내던 시제와 집에서 지내던 그 이하의 선조와 부모의 기제(忌祭)는 어떻게 구분하여 지낼 것인가? 문제는 유골함이 다 같은 묘안에 있다는 데 있다. 가문별로 대책 방안이 나오겠지만, 시대의 변화는 우리의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관습도 어쩔 수 없이 변하게 만드는 괴력을 지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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