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한 언어인가
각 나라와 민족 간에는 각기 그들만의 고유의 언어가 있다. 우리나라도 우리 고유의 언어인 한국어가 있다. 꼭 그런지 안 그런지는 몰라도 이런 말이 있다. 이탈리아 말은 노래를 위해 있고, 프랑스 말은 사랑을 위해 있고, 독일 말은 철학을 위해 있고, 영어는 사업을 위해 있고, 일본 말은 외교를 위해 있다는 것이다.
즉, 이탈리아 말과 노래를 결부시키는 것은 이탈리아 사람은 누구나 노래를 잘 부르기 때문이고, 프랑스 말과 사랑은 프랑스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시인이 하는 말 같다는 뜻이고, 독일 말과 철학은 독일에 유명한 철학자가 많아서인가 싶고, 영어와 사업은 영어가 거의 국제적 사업용어로 쓰기 때문일 것이고, 일본어와 외교는 일본말은 가부가 분명치 않고 완곡한 표현이라는 데서 그렇다 한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어는 무엇을 위한 말일까? 물론, 우리말도 듣기 좋고 표현이 풍부하고 여러 가지로 다른 어느 나라의 말보다도 뛰어난 점이 많이 있다. 그렇지만 근래에 와서 끊임없이 변질이 되어 본래의 우리말의 좋은 점이 점점 없어져가고 거칠고 저속한 욕설과 저주의 말들이 일상용어 속에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쉽게 느낀다. 어찌 보면 우리말은 마치 욕하고 싸움을 하기 위한 말처럼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 보면 앞에 가는 차가 좀 속도가 느리다든지, 어딘가 자기 진로의 방해가 되었다 싶으면 추월하며 차창을 열고 상대편 운전자에게 “운전 똑바로 해!” 하며 험악한 말로 쏘아붙이며 간다. 또 어느 쪽이 부주의 했건, 접촉 사고라도 나면 즉시 차를 세우고 나와 잘잘못을 차분히 가리려 하기보다는 먼저 큰소리를 치고 삿대질과 욕설부터 나오며 기선을 잡는다. 그러다 심하면 주먹다짐까지 벌이는 장면도 심심찮게 본다. 요즘 아파트의 층간 소음으로 인한 이웃 간의 싸움이 자주 일어난다. 심지어는 이로 인해 살인까지 저지르기도 한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이런 소음 방지를 위해 실내 바닥에 카펫을 깔지 않는가.
말에는 곱고 부드러운 말이 있고 거칠고 험한 욕설이 담긴 막말이 있다. 마음속에서 울어나는 감정에 따라 고운 말이 되기도 하고 막말이 되기도 한다. 우리사회에 고운 말보다 막말이 늘어간다는 것은 그만큼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감정이 거칠고 메말라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더 염려스러운 것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말이 막말화 되어가는 점이다. 아이들은 감정이 메말라서라기보다는 어른들의 말 속에서 욕설인지 아닌지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다.
지난 대선 당시 후보자들의 방송토론에 나온 어느 후보는 상대편 특정 후보를 향해 “반드시 떨어트리려고 나왔다.”라고 했다. 또 요즘 세월호 특별법이 여·야간에 합의를 두 번이나 하고도 유가족들의 수용불가로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음은 온 국민이 다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이 즈음 이와 관련하여 야당의 모 의원은 대통령을 향해, “국민을 구조하는데 나서지 않는 대통령, 진상규명에도 나서지 않는 대통령, 무책임한 대통령, 비겁한 대통령‘이라며, “당신은 국가의 원수가 맞다.”라고 그의 sns에 올렸다. ‘원수’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보면, 네 가지로 나와 있다.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元首}, 군인의 가장 높은 계급(元帥), 근본이 되는 수(元數), 원한이 맺힐 정도로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怨讐)이다. 과연 “당신은 국가의 원수가 맞다.”라고 한 말이 넷 중 어느 것인지는 독자에게 맡기겠다.
어른이나 사회 지도급에 계신 분들부터 고운 말 쓰기 운동을 펼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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