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11월을 맞으며

문석흥 2014. 11. 4. 09:26

11월을 맞으며

 

 

   2014년 갑오년 달력장도 이제 2장밖에 남지 않았다. 쏜살같이 가는 세월이라더니 가볍게 달랑 걸려있는 달력이 세월의 흐름을 실감케 한다. 청량한 공기 속에 푸르디푸른 하늘아래 펼쳐졌던 황금물결의 들녘도 이젠 사라지고 울긋불긋 아름답던 단풍도 한 잎 두 잎 떨어져 스산한 바람에 이러 저리 뒹굴고 있다. 한참 무르익어 가던 가을도 이젠 떠날 준비를 하는 11월을 맞으면서 왠지 아쉬움이 남는다.

   11월은 124 절후 중 19번 째 절기인 입동과 소설이 들어 있다. 입동은 태양의 황경이 225도인 때이며 양력으로 1178일 경이 된다. 음력으로는 10월에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 후 15,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15일 쯤에 들어 있다. 입동은 겨울이 시작된다고 하여 겨울 날 준비로 무엇보다도 김장을 했는데, 입동 전후로 1주일간이 적기로 집집마다 김장이 한창이었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는 입동과는 관계없이 오히려 훨씬 늦게 김장을 담근다. 그것은 지구의 온난화 현상도 있겠지만 김치 냉장고라는 우리나라 특산품 덕에 장기 보관이 가능한 점도 있거니와 김장의 기본 재료인 배추와 무의 생산량의 여유가 있음도 김장을 담그는데 시기적 압박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124 절후에는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세시풍속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입동에는 치계미라는 미풍양속이 있었는데. 이 날에는 마을에서 자발적으로 마을의 노인들을 위해 양로잔치를 벌였다. ‘치계미(雉鷄米)’는 원래 꿩과 닭, 쌀을 주로 하여 사또 밥상에 올리는 반찬값으로 받는 뇌물을 말하는데 이 치계미를 마을 노인들에게 사또처럼 대접 하려는 데서 이뤄진 풍습으로, 아무리 가난해도 이 치계미에는 출연했다고 한다. 만약에 치계미 출연이 정히 어려운 형편인 집에서는 도랑탕잔치를 했다 한다. 입동 무렵이면 동물들이 월동을 위해 나름대로 땅속이나 굴속으로 드는데 특히 미꾸라지는 동면을 위해 도랑으로 스며들기 때문에 도랑을 파서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어 이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끓여 노인들에게 대접했다하여 도랑탕이라 한다.

   또 입동에 얽힌 이야기로는 지방별로 각기 다른 게 있다. 전남지방에서는 입동에 날씨를 보아 그 해 겨울의 날l를 점쳤다. 입동 날 날씨가 추우면 그 해 겨울이 몹시 추울 것이라 했고, 경상도 도서지방에서는 입동에 갈가마귀가 날아온다고 했다. 밀양지방에서는 갈가마귀 배에 희색 부분이 보이면 이듬해 목화가 잘 된다고 했고, 제주도에서는 입동 날 날씨가 따듯하지 않으면 그 해 바람이 독하다고 했다. 중국에서는 입동 후 5일씩 묶어 3(三候- 초후, 중후, 말후)로 삼아 초후는 물이 얼기 시작하고, 중후에는 처음으로 땅이 얼어붙기 시작하고, 말후에는 꿩은 드물고 조개가 잡힌다고 했다.

   지금은 다 잊힌 이야기고 믿거나 말거나 한 하나의 속설로 가볍게 들어 넘기지만 옛날에는 지금처럼 과학문명의 혜택을 못 받고 살 시절이었으니 생활 속에 필수요, 하나의 신앙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이 문명사회 속에 살면서도 더러는 지켜지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금년 입동은 117일이다. 입동은 한자로 立冬으로 표기한다. 글자 그대로 겨울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124절후에 대한 각각에 지니고 있는 의미나, 어느 달에 어느 절후가 언제 들어 있는지 과연 얼마나 알고 지낼까? ‘옛것을 익히고 미루어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발전된 현대 문명의 이기 속에 길들여가고 있는 이 시대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말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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