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화장실 소고

문석흥 2015. 6. 15. 18:29

화장실 소고(小考)

 

 

   은퇴한지 15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나의 뇌리 속에는 내가 현직에 있었던 그 시절의 그 모습만 흘러간 영상을 보듯 떠오른다. 자주는 아니지만 어쩌다 학교의 큰 행사가 있거나 할 때 은퇴한 전직 은사들의 초대가 있어서 방문할 때가 있다.

   교문을 들어서면서 부터 내 눈을 의심할 정도로 달라진 캠퍼스의 모습을 보면서 놀라자 않을 수가 없었다. 운동장에는 파란 잔디가 깔리고 교사를 제외한 나머지 교내 곳곳이 다 아스콘 포장으로 덮여 있었고 무성하게 자라 거목이 된 교정의 수목들은 학교의 오랜 역사를 그대로 말해 주고 있었다. 먼지 한 점 없는 파란 잔디 운동장에서 체육활동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그림에서나 본 듯한 환상 그대로였다. 학교 내부시설은 어떤가. 알루미늄 새시의 이중창, 온풍 냉풍이 나오는 온 난방 시설, 모양 있고 견고한 후래시 도어의 교실 출입문, 38명의 학급 인원이 넉넉하게 앉는 개인용 책걸상, 이렇게 고급스럽게 개선된 교실 환경, 예전엔 상상이나 했던가. 더 놀란 것은 화장실이였다. 가정이나 다름없는 수세식 양변기에 화장실 내부 시설이 다중이 이용하는 고속도로 휴게실 화장실 못지 않게 갖출 것 다 갖춘 정결한 환경이었다.

   지난날의 학교 운동장은 모두가 흙바닥이어서 바람 불면 흙먼지 날리고, 비가 오면 배수도 잘 되지 않아 논바닥이나 다름없었다. 학교 구내는 어느 한 곳도 포장된 곳이 없어 교실 안은 늘 흙먼지 투성이어서 청소당번 학생들이 물걸레질 청소하기에 바빴다. 교실 창문은 단창에다 그나마 깨진 유리창을 제때 보수도 못해 눈 비가 들이치고 찬바람이 들어오던 냉방 같은 교실, 게다가 교실바닥은 마루장이 낡아서 양말이 해지고 때로는 발바닥에 가시가 박히이도 했다 겨울에는 난로에 나무나 조개탄을 땠는데 그나마 물량이 적어 오전에 1~2시간 피우는 것으로 족했다.

   화장실은 또 어떤가? 당시는 화장실이 아니고 변소라고 불렀다. 수세식은 감히 생각지도 못했을 시절이다. 변소 안에서 본 변이 아래에 있는 거대한 탱크로 떨어져 변이 탱크에 거의 찰만하면 수거해 가는 형태다. 그나마 근래에 와서는 펌프가 달린 수거용 차량이 와서 수거해 갔지만, 그 이전에는 우마차에 커다란 목제탱크를 싣고 와서 인력으로 퍼서 담아 가곤 했다. 소변 또한 요즘처럼 개별용 소변기가 아니고 배수로처럼 개방식으로 되어 있었다. 이런 구조의 변소였으니 그 불결함과 악취에 젖어 있는 비위생적인 학교 변소가 지금은 문화인이 사용하는 선진국형 화장실로 벼신한 것이다.

   어느 나라고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알려면 화장실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아파트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수세식 화장실이 대중화 된 것이다. 이 시기만 해도 아파트나 고급 단독 주택 외에는 학교나 관공소 같은 다중이용 시설, 농촌 지역에는 거의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당시 아파트에 사는 학생이 학교에 와서 용변이 마려우면 학교 변소를 못가고 집이 가까운 학생은 집으로 달려가서 용변을 보고 오곤 했다.

   이제 우리의 화장실은 가히 세계적 수준이다. 외국에 나가 봐도 우리의 화장실이 전혀 손색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중국만 해도 호텔을 제외하고는 식당이나 고속도로 휴게실 화장실은 화장지도 없고 수세식이긴하나 좌변기가 아닌 재래식 변기를 사용하지만 그나마 물이 나오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다. 경제의 발전과 함께 국민들의 의식의 선진화가 따라야 문화 수준도 높아지는 것, 우리의 화장실 문화가 이 수준까지 온 것에 대하여 찬탄이 아니 나올 수 없다.


'칼 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균수명은 길어졌건만  (0) 2015.11.21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0) 2015.06.15
길거리의 친절한 사람들  (0) 2015.06.15
불효소송  (0) 2015.05.31
스승의 날이 부담스런 스승님  (0) 2015.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