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새봄을 맞으며

문석흥 2016. 3. 28. 15:32

새봄을 맞으며

 

 

   봄을 시샘한다고 해서 붙여진 꽃샘추위가 기를 쓰듯 3월 하순이 가까이 오는데도 멈출 줄 모르더니 남쪽으로부터 퍼져오는 봄기운 앞에 더는 못 버티고 맥없이 사라져져 갔다. 노란 산수유와 흰 매화가 어느새 봄이 왔음을 알리며 고운 자태로 사람들을 반겨 준다. 세상의 모든 것이 급속도로 변해가고 있지만, 자연의 순리만큼은 변함이 없다. 특히 우리나라는 온대지방이어서 일 년 사계절이 뚜렷해서 각기 그 계절이 주는 특징을 골고루 다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자연이 주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이제부터는 봄이 무르익어 가면서 들에 산에 개나리, 진달래, 벚꽃, 유채꽃이 만발할 것이고 민들레, 할미꽃 같은 들꽃도 피어나 온천지를 울긋불긋 꽃동산을 이룰 것이다. 꽃을 보고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으랴, 그래서 꽃은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모든 아름다움을 꽃에 비유하는 것이다. 그 아름다움의 경지를 벗어나 무어라 더 표현할 수 없을 때 꽃보다 아름답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처녀를 봄에 비유한다. 이은상 작사 홍난파 작곡의 가곡 봄처녀의 종절에,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오시는고’.에서 보아도 봄과 처녀와 꽃이 어우러져 있다. 봄과 처녀와 꽃에는 얼른 보아도 따사로움과 부드러움과 고움을 풍겨 주는 데서 공통점이 있다.

또 하나 봄의 전도사로 이 땅을 어김없이 찾아오던 우리와 친근한 철새인 제비가 요즘은 왠지 볼 수가 없다. 어린 초등학교 시절 그리운 강남이라는 동요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정이월 다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며는, 이 땅에도 또다시 봄이 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오그러나 이 동요는 지금은 들어 볼 수도 없다.

   폴란드에서는 봄은 처녀, 여름은 어머니, 가을은 미망인, 겨울은 계모로, 사계절을 여인들에게 비유한다고 한다. 봄의 부드러움을 처녀에, 여름철의 풍성함을 어머니에, 가을의 쓸쓸함을 미망인에, 겨울의 차가움은 계모로 나타냄인 것이다. 정설을 아니겠지만 우리의 정서로 보아도 그런 느낌이 든다.
   봄은 생명, 희망, 환희의 세 가지 덕목을 지닌다고 한다. 더 설명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봄은 이 덕목을 지니고 한해를 새롭게 출발하는 기점이 되는 것이다. 모든 학교의 입학도 봄에 이뤄지고 회사의 신입사원 채용도 대부분 봄에 시행된다. 한편, 봄은 구태를 완전히 벗어 버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한다는 환골탈태(換骨奪胎)의 의미도 있다.

   이제 이 봄에는 주민의 대변자를 뽑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그 동안 각 정당에서 공천자를 뽑는 과정에서 당내 계파간의 노골적인 싸움과 탈당, 야당의 분당 사태까지 보여준 것은 국민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고 실망을 안겨다 주었다. 선거 후에 새 국회가 구성되었을 때 과연 평온하고 안정된 건절적인 국회가 될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진정 생명과 희망과 환희를 안겨다 주는 새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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